
130여 개 아름다운 섬의 군락. 푸른 하늘 아래 기다랗게 뻗은 나무 기둥 위로 바람결에 흔들리는 야자수 나무와 함께 덩달아 내 마음도 자유로워지는 꿈의 여행지 하와이. 경쾌한 날씨가 주는 편안함 뒤로 하와이의 깊숙한 원시 자연을 가까이서 접해본다면 어떨까?
각기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3개 섬(카우아이, 마우이, 오아후)의 숨겨진 자연풍경은 당신이 생각하는 하와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Aloha! 꿈의 여행지 하와이
나의 하와이 첫 경험은 업무가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하와이는 내게 부담스러운 곳 중 하나였다.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 출장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더 컸으니까. 무거운 마음을 안고 공항에 도착하니 처음 왔을 때와 달리 편했다. 왜일까?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좋았다. 분명히 한 번 다녀온 곳이고, 그때랑 방문한 시기도 같은데 원인 모를 애정이 샘솟았다.
생각해보면 하와이에 대한 호감은 비행기에서부터였다. 승무원들이 노란 플루메리아 꽃을 꽂은 채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와 함께 건네는 인사말 “알로하!(Aloha)”, 싱그럽고, 부드럽게 들리는 이 단어를 들을 때부터 나는 긴장감을 풀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하와이가 좋아진 것 같다. “알로하” 평범한 인사 한마디이지만 그 뜻을 새겨보면 의미는 배가 된다.
알로하(A.L.O.H.A)의 철자 하나하나에는 친절·통합·화합·겸손·인내를 나타내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의미를 알고 나서 하와이라는 지역과 그곳 사람이 더 친근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물론 하와이는 개인적인 호감으로 평가하기에 지나치게 유명한 곳이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휴양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연이면 자연, 여행이면 여행, 낭만이면 낭만, 많은 사람의 그 어떤 취향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 바로 하와이가 아닐까 싶다.

쉬기만 해도 좋은 곳에서 트레킹?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휴양지에서 왠 트레킹이지 싶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트레킹하며 본 하와이는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웅장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내 두 발로 하와이 구석구석을 한 곳도 빼놓지 않고 거닐며 원시 자연의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는 이곳을 제대로 음미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와이에는 130여 개의 아름다운 섬이 있다. 이 수많은 섬의 무리 중 하와이가 우리에게 허용해준 섬은 단 6개뿐이다. 그중에서도 때 묻지 않은 원시 자연을 가장 잘 간직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카우아이(Kauai)섬과, 이국적인 풍광을 뛰어넘어 신세계에 가까운 풍광을 지닌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이 있는 마우이(Maui)섬을 꼽겠다. 두 섬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했지만, 우리에게 보여주는 풍광은 전혀 다르다.
먼저 방문할 곳은 카우아이섬이었다. 하와이의 모든 섬은 와이키키 해변으로 유명한 오아후섬의 호놀룰루국제공항을 경유해야 한다. 아마 처음 하와이를 방문한 사람이 오아후섬에 머물지 않고 바로 카우아이로 넘어간다면 기대한 하와이의 모습과 다른 풍경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푸른 해변과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비치에 수많은 유명 체인 호텔이 즐비하고, 수영복 차림으로 상점이 가득한 번화가를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전형적인 휴양지 모습 대신 이곳 카우아이에서 접하게 되는 모습은 큰 차량이 지나다니기 불편할 만큼 수풀이 무성한 길, 정겨운 시골집을 연상케 하는 소박한 느낌의 마을, 온 섬을 휘젓고 다니는 위풍당당한 야생 닭의 무리다. 완전히 자연 속에 동화되어 있는 시골의 모습이다. 그래서 카우아이섬은 트레킹 여행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접근성이 좋지 않더라도,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해와서다.

둘레길처럼 걷는 아와아와푸히 트레일(AWAAWAPUHITRAIL)
제주도의 약 80% 크기인 카우아이의 자연을 탐닉하기 위해서 우린 카우아이의 리후에공항을 기점으로 첫날은 남서쪽으로 닦인 도로를 따라 와이메아 캐니언 전망대로 향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와이메아 캐니언을 ‘하와이의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말했다. 생뚱맞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자금성과 경복궁을 연상시킨다. 중국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와서 경복궁을 보고 실망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난 사실 자금성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경복궁은 규모가 작지만 섬세한 아름다움이, 자금성은 거대함이 주는 웅장함이 매력일 텐데 서로가 우리네 문화재가 예쁘다고 하는 셈이다. ‘여긴 같은 미국 땅이라 이런 실랑이는 없겠다’며 혼자서 피식 웃으며 대협곡 와이메아를 바라보았다.
와이메아 캐니언 전망대를 지나 오늘의 트레킹 코스 아와아와푸히(AWAAWAPUHI)에 다다른다. 아와아와푸히 트레일은 코케에(Kokee)주립공원에 속해 있는 10km 정도의 왕복 코스다. 태평양을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평탄하지만 내리막이 더 많았다.
왕복 코스라는 걸 알고 내려가다보니, 올라올 두려움에 마음의 부담은 커졌다. 원래 하와이는 화산섬이기에 돌도 많고 웅장한 만큼 제법 가파르고 험한 코스들이 많다. 그러나 아와아와푸히 트레일은 흙길위주의 완만한 코스라 평상시 걷는 연습을 하는 중장년이라면 누구라도 걸어볼만한 코스다.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쾌적한 숲길을 지나 트레일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무성한 억새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우리가 가을에 보던 건조한 느낌이 아닌, 촉촉한 물을 가득 받아 윤이 나는 억새였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생애 이렇게 아름다운 색감의 촉촉한 억새는 처음이었다.
억새 군락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길을 벗어나면 내 키 높이까지 자란 억새가 숨겨둔 풍광이 펼쳐진다. 마치 칼날로 베어놓은 듯 뚜렷한 협곡의 산세와 함께, 절벽 사이로 짙푸른 태평양의 포말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런 비경을 숨겨두려 억새가 그리 무성했나 보다.

550도로에서 맞이한 하와이 최고의 일몰
와이메아 캐니언을 벗어날 때쯤 일몰이 시작됐다. 아침만 해도 살짝 비를 뿌려주던 하늘이 이렇게 기막힌 일몰을 선물할 줄이야. 그 찰나를 감상하기 위해 잠시 차를 한쪽 편에 세웠다. 해변에서 칵테일 한잔 즐기며 저물어가는 노을을 감상하는 로맨틱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노을빛이 비춰주는 도로를 따라 걷고 싶을 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노을빛에 물드는 들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강렬한 노을빛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등산로, 칼랄라우
하와이에서 잘 알려진 트레일 중 하나인 칼랄라우는 아름다우면서 위험하기로 유명하다. 칼랄라우 트레일의 길이는 편도 약 18km로 왕복 1박2일이 소요되는 코스다. 제대로 된 등산로도 없고 계곡도 건너야 하는 원시적인 곳으로, ‘미국의 위험한 트레킹 코스 10’에 들어갈 만큼 걷는 구간 중 아주 위험한 곳도 있다. 특히 카우아이는 하와이 섬 중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다.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만큼, 비 또한 트레킹 시 위험요소가 된다. 사실 나는 이날 코스는 만만하다고 생각했다.
위험하기 때문에 맛보기라도 볼 요량으로 코스를 짧게 잡았기 때문이다. 코스 초반에 있는 해변을 넘어가면 위험한 구간이 많기 때문에 왕복 8km인 하나카피아이 비치(Hanakapiai Beach)까지만 가기로 했다. 그런데 밤 사이에 살짝 온 비 때문에 길이 제법 미끄러웠다.
짧은 거리지만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걷다보니 난이도가 어제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풍광이 어제와 달라 걷는 재미가 있었다. 푸른 태평양을 계속 바라보며 울퉁불퉁하게 이어진 나팔리 코스트와 아름다운 해안가를 감상하며 걷는 길인데,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비가 살짝 오고 그쳤는지 무지개까지 코스를 장식해줬다. 첫날 들은 노래 ‘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가다보니 목적지인 하나카피아이해변에 도착했다. 마치 머드축제를 다녀온 것처럼 더러워진 신발을 핑계로, 밑창도 씻을 겸 바닷물에 두 발을 담갔다. 여행 중 어느 해변에 가더라도 몸은 담그지 못할지언정 발은 꼭 담가본다. 여행을 자주 가면서 생긴 습관 내지는 나와의 약속인데, 이렇게 하면 하나의 감각이 더해져 그 공간, 그 시간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리후에공항으로 향하던 길에 지나가는 차 안에서 본 찰나의 풍경. 무수히 많은 야자수가 푸른 하늘에 넘실대며 춤추고 있었다. 아! THIS IS HAWAII!, ‘이것이 하와이다’ 싶었다. 현실과 꿈속의 하와이 이미지가 일치하던 순간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 시원하고 멋진 야자수 풍경은 내 시야에 보이는 좋은 위치에 보기 좋게 걸려 있다. 한동안 이 사진을 보며 따뜻한 하와이의 공기와 푸른 하늘, 반짝이며 흔들리는 야자수잎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될 것 같다.

갈색 신세계 할레아칼라
트레킹 중 반가운 길을 꼽자면 숲이 우거지고, 완만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흙길일 것이다. 할레아칼라는 3시간 정도의 평지를 제외하고서는 이러한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코스였다. 산행시간만 6시간 이상, 총 18km를 걸으며 내내 모래 가득한 갈색 사막 같은 길을 걸었다. 그렇게 4시간 정도 걷고 나니 간단하게 먹어도 점심이 꿀맛이었다. 그다음 1시간30분 동안은 정말 끊임없이 산을 꽈배기처럼 둘러 산을 넘어가는 힘든 난이도의 등산이었다. 생각해보면 꽤 힘든 코스였다. 초반 3시간 평지에 가까운 갈색 사막지대를 걸었을 때는 조금 무료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 너무도 깊게 자리 잡은 길이다. 한동안 잊히지 않을 듯싶다. 이런 풍경이 하와이에 있나 싶다. 아니,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곳일 듯하다.
세계 최대의 휴화산이고, 3000m 이상 높이에 등산로가 있어 구름이 산 아래에 걸쳐 있는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하는 곳, 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나사천문대도 위치하고 있는 곳, 영화 ‘마션·’ ‘스페이스오디세이’의 촬영장소로 쓰인 곳이 바로 할레아칼라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갈색 신세계다.

오아후에서의 마지막 트레킹
여행의 마지막 섬인 오아후, 또한 마지막 트레킹이다. 우린 마카푸우 포인트로 향했다. 원래 계획했던 다이아몬드 트레일이 얼마 전 폭우로 폐쇄됐기 때문이다. 오전 5시가 좀 지난 이른 아침 마카푸우에서 오아후섬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하지만 흐린 하늘은 일출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슬픔도 찰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는 시간, 비가 내린다. 열심히 걷고 뛰었다. 흐린 게 행복한 거였구나. 그래도 흐려서 다행이었구나. 별것 아닌 일에도 사람은 깨닫고 또 감사하나 보다. 여행 중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해변에서 수영해도 좋고, 트롤리를 타도 좋고, 쇼핑에 심취해도 좋다. 제각기 빡빡한 일정 속에 특히 가장 길었던 어제의 할레아칼라 트레킹을 마치고 나서 주어진 자유시간은 달콤했다. 와이키키를 거닐며 맛집도 가고, 블루하와이도 마시고. 아! 행복하다.
하와이의 매력 느끼려면 한번쯤은 트레킹을
‘알로하’란 인사를 통해 하와이에 막연한 호감만 가진 갈색빛 신세계를 선사해준 할레아칼라. 나에게 지금 하와이는 다양한 풍경과 즐거움이 있는 지상낙원이다. 역동적인 서핑과 수영을 즐길 수 있고, 일몰이 어울리는 낭만적인 해변을 걸을 수 있으며, 번화한 거리에서 쇼핑도 즐길 수 있다. 빛깔 곱던 억새와 원시림을 선사한 아와아와푸히, 수평선 너머 무지개를 선사해주던 질퍽한 진흙 트레일 칼랄라우, 달나라를 방불케 한 신비로운 이색지대 할레아칼라는 상상하지 못했던 하와이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 것을 해도 즐거움이 가득할 수 있는 하와이지만, 트래킹을 한번쯤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와이의 진짜 매력과 숨겨진 매력을 느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