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영광은 짧고 뒷감당은 길다. 국내 감자 생산자들의 심정일 것이다. 2014년 하반기 출시된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은 제과업계에 단맛 돌풍을 일으켰다. 한때는 없어서 못 팔던 허니버터칩은 해태제과의 매출액과 주가는 물론 갑자칩 시장 전체의 성장을 이끌었다. 국내 농업의 위축과 함께 악화일로를 걷던 감자농가도 지난해에는 모처럼 ‘맑은 날씨’를 맛봤다. 돌풍은 언제고 가라앉게 돼 있어 돌풍이다. 감자칩 열풍이 시들해지자 감자농가부터 울상을 짓고 있다. 제과업계가 소비자의 수요를 예측해 미리 물량을 조절하고 대체상품을 내놓으며 적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농업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
가을에도 감자가격 하락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업관측센터는 표본조사 결과 8월 이후 출하되는 고랭지감자의 재배면적은 전년보다 10.7% 늘어났으며, 출하량은 7.9% 증대됐을 것으로 본다. 고랭지감자는 봄감자보다 상품성이 좋아 8월보다는 오르겠지만 지난해에 비해 가격이 떨어진 상태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허니버터칩 출시 이후 불었던 ‘허니맛’ 감자칩 열풍이 사그라진 것이 감자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14년 말 허니버터칩 출시로 승승장구하던 감자스낵 시장은 지난해 6월 정점을 찍고 꺾인 것으로 유통업체들은 보고 있다. 대부분은 1분기 때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허니 시리즈 3종(농심 수미칩 허니머스타드, 오리온 포카칩 스윗치즈, 해태 허니버터칩)의 1분기 매출은 327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스낵시장 규모는 25% 확대됐다. 이 같은 성장세를 보고 지난해 2월 농심은 국산 수미감자 6000톤을 추가 구매하는 등 감자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여파로 국내산 감자가격이 122%나 올랐다. 당시 농심 측은 “국내 식품업계가 대부분 미국산 감자를 사용하지만 수미감자칩의 주재료는 국산이고, 올해는 감자 재배농가를 위해 더 많은 양을 구입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말에 자극받은 농민들이 감자 재배를 늘리면서 농업관측센터가 조사한 가을 고랭지감자 재배의향 면적은 전년도보다 18% 늘어났다.
유행에 맡기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1년 농사
농민들이 고랭지감자를 심기 시작한 지난해 6월 정작 단맛 감자칩의 인기는 정점을 찍고 있었다. 2015년 3분기 GS25(-2.3%), CU(-9.6%), 세븐일레븐(-5.1%)의 감자스낵 매출액은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고랭지감자가 본격적으로 출하되고 난 10월 수미감자(상품, 20㎏) 도매가격은 2만4600원으로 평년(2만6380원)에 비해 6.75% 떨어졌다. 수미감자(상품, 1㎏) 소매가격도 2330원으로, 평년(2360원) 대비 1.27% 하락했다. 최종 생산물인 과자의 수요와 공급, 원료인 감자의 수요와 공급은 몇 개월을 두고 엇갈렸다.
감자칩 열풍이 꺼져가던 2015년 하반기 출하량 증가분에 비해 낙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 감자스낵 시장의 확대를 감안하더라도 상반기 감자가격이 2배 이상 오른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료로 100% 국내산 감자를 사용하는 제품은 농심 수미칩뿐이었고, 허니버터칩 등 다른 감자칩들은 계절에 따라 국내산과 수입산을 함께 쓰거나 수입산을 사용했다. 오리온 포카칩 스윗치즈, 홈플러스 케틀칩 허니앤버터맛은 미국산을, 해태 자가비 허니마일드는 중국산 감자를 사용한다. 해태 허니통통은 미국산과 국산 감자를 함께 사용했다. 2015년 7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낸 ‘감자 수급동향과 시사점’을 보면 해마다 12월~다음해 2월 사이에는 감자칩용 감자 수입이 급증한다. 미국산과 호주산 칩용 감자에 평소 304%의 고율관세가 적용되다 국내 감자 출하 시기와 겹치지 않는 12월~다음해 4월부터 ‘무관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허니버터칩이 본격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던 2014년 12월부터 2015년 4월 미국산 칩용 감자 수입량은 1만800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 증가했다. 호주산 칩용 감자 수입도 전년 대비 2.3배가 증가했다. 2015년 기준 감자 수입량은 2만9548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감자칩 열풍이 수입량 증대를 이끈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 감자가격 고공행진은 계절적 요인으로 평년보다 수확량이 줄어든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히며, 이에 더해 감자칩 열풍에 편승한 산지 사재기나 투기 등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도 나온다. 이 ‘눈속임’은 결국 농민들이 올해도 감자 재배를 늘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경북지역에 거주하는 한 농민(52)은 “감자는 저장성이 어렵고 무게가 나간다. 최근 10년간 가격변동이 심해서 짓지 않는 추세였으나, 양파 등 다른 대체작물이라고 상황이 나을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거품은 올해 감자가격 폭락으로 증명됐다. 허니버터칩은 지난 5월 문막에 제2공장을 증설했지만 매출액은 3억~4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하지만 감자가격은 20~30% 폭락했다. 2010년 이후 감자 시장은 수입품 위주로 완전히 급변했다. 2014년 감자가격은 큰 폭으로 꺾였다. 전국 패스트푸드 매장과 호프집에 공급되는 감자튀김용 감자가 국내에서 제일 큰 손인데, 4~8톤가량이 고정적으로 수입물량으로 채워지고 있다. 허니버터칩 돌풍을 목전에 둔 무렵 감자농민들은 역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농민신문>은 지난해 8월 국내 감자 생산량은 10α(300평)당 평균 2.7톤 정도로, 미국(4.6톤)·네덜란드(4.6톤)·프랑스(4.2톤) 등 선진국에 견줘 턱없이 낮다고 보도했다. 제과업계나 프랜차이즈 업계의 깜짝 유행에 힘입어 지속적 소득안정을 꾀하기 어려운 구조다. 2014년 12월에는 한·호주 FTA 발효됐다. 현재 감자 도매가격은 2014년보다는 높지만 2015년보다는 큰 폭으로 낮게 형성돼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 역시 “수입산 감자가 품질과 가격 측면에서 경쟁 우위를 보이고 있다”며 “수입산 감자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분함량 향상, 생육기간 단축, 저장성 강화 등 기술개발을 통해 국내산 가공용 감자 품종을 개발, 보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국 단위 협동조합 통해 수급 조절해야”
제과업계 트렌드는 ‘단맛 감자칩’에서 ‘바나나’로 바뀌고 있다. 올해 상반기 초코파이 바나나맛 출시 등의 영향으로 바나나 도매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가까이 올랐고, 바나나 소매가 역시 1년 새 12% 넘게 뛰었다. 바나나맛 돌풍은 단맛 감자칩보다 더 오래, 파급력 있게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과업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고령화되는 농촌에서 ‘농업기술의 향상’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고, ‘유통구조’의 혁신도 수십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유행이 변동하는 프랜차이즈 시장과 제과업계에 기대야 하는 것일까.
장경호 농업농민문제연구소 ‘녀름’ 소장은 ‘전국단위 생산자 조직의 형성’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농산물의 특성상 수요와 공급이 바로바로 일치하지 않고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아 농민들의 수입이 불안정하게 되는 면은 있다. 대부분 농업 선진국에서는 그런 부분을 감안해 수급안정을 할 수 있는 별도의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아주 취약하다. 그러다보니 가격변동폭이 크다.”
선진국의 경우 감자면 감자, 포도면 포도 등 단일 품목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전국 단위 협동조합이 존재한다. 이 조합에서 기후, 소비시장, 국제무역 동향 등을 전반적으로 분석해 이듬해의 재배면적을 결정한다. 네덜란드 원예농가의 70% 가까이가 가입된 ‘그리너리 협동조합’이나, 덴마크 양돈조합인 ‘데니쉬 크라운’ 등이 대표적이다. 전국적 단일 조직체가 존재하는 만큼 가격 교섭력도 강하다. ‘투기’가 끼어들 여지도 적다. 한국은 농산물 수매는 시·군 단위의 지역 농협협동조합에서 대신한다. 또한 전북·전남 등 광역단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농산물 최저가 보장제’ 시행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 역시 “전국 단위 생산자 단체 등의 조직화와 자조금 운영 등으로 수급 및 가격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장 소장은 “지역 단위에서의 최저가격제 등의 시도도 중요하지만 전국 단위의 생산자 조직을 만드는 과제는 필수적이다. 도의 지원을 받더라도 전국 단위 생산물량의 20~30%에 불과해 전체적인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각각의 주산지들이 지역별로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생산조정이나 판로개척 등을 개별적으로 하다 보니 전국 단위 물량 조절에는 접근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농협 개혁이다. 농협중앙회는 농업과 관련한 조사·지원 업무만 남기고, 유통 및 생산자 조직은 고추·포도·쌀·감자 등등 품목별 협동조합으로 해체하는 농협개혁안이 14대 대선 때부터 제기됐지만 어느 정권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농협 조직을 완전히 해체하고 축소시켜야 하기 때문에 농협 관료조직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월 농협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농협개혁의 핵심을 담아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장 소장은 “국내 농정은 물가안정 명목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재빨리 수입을 해 가격을 다운시키는 정책은 활발히 하고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정책이 거의 없다”며 “농산물 가격과 관련해 사후적 대책보다는 사전적으로 수급 및 가격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며, 전국 단위의 생산자 단체 조직화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원의 보고서 역시 “전국 단위 생산자 단체 등의 조직화와 자조금 운영 등으로 수급 및 가격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도 밝히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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